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폭 병기 (문단 편집) ====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 [[영국]] ==== [[이탈리아]] 해군도 가이텐과 유사한 특수 어뢰를 만들었다. 이쪽은 카미카제나 가이텐처럼 돌격해서 적과 충돌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적함 밑에 가서 자석이 붙은 기뢰를 배 밑바닥에 부착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런 형태의 작전을 위해 따로 설립된 부대가 [[Decima Flottiglia MAS]]로 현대 UDT의 원조격인 부대다.] 즉 자폭 병기가 아니라 수중 택시. 알렉산드리아에 이 어뢰가 투입되었을 때 붙잡히지 않은 나머지 4명은 상륙하여 적당히 외국인인 척을 하다가 연락책과 만나기 전에 잡혀서 포로가 되었다. [[http://en.wikipedia.org/wiki/Raid_on_Alexandria_(1941)|이걸 타고 알렉산드리아에 잠입했던]] 이탈리아 해군 승무원 6명[* 1기당 2명씩 총 3기.] 중 어뢰가 중간에 고장나 붙잡힌 2명은 자기들이 폭탄을 설치한 군함에 포로로 잡혀서 구조되어 심문을 받다가 폭탄이 터질 때가 다 되자 "'''5분 후 이 배는 폭발한다!'''" 라는 [[명언]]을 남겼고 정말로 5분 후에 배가 폭발했다. 이 공격으로 영국군은 전함 2척이 대파당했고 동지중해의 제해권을 상실할 뻔했다. 이때 대파된 게 바로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의 1번함인 퀸 엘리자베스와 3번함인 밸리언트이며 영국군은 "'''이탈리아 해군의 용기는 타고 있는 배의 크기에 반비례한다'''" 는 말을 남겼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폭탄이 선체에 제대로 붙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대파당한 군함들은 그럭저럭 갑판이 물 위에 떠있을 정도는 되었고, 이탈리아군 승무원들은 폭탄 근처 구획에 갇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부상만 입고 살아남았다. 이후 이들은 포로수용소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며, 그 후 이탈리아가 추축국에서 탈락한 후에는 신생 이탈리아 해군의 일원이 되어 독일군에 대항해 싸웠다. 당시 제네바 협약 등이 형식상으로나마 남아있어 영미연합군은 물론 막장 독일, 일본이나 독재정권이였던 소련처럼 프로파간다로 떡칠된 나라더라도 경우에 따라 포로에 대한 대접은 나쁘지 않았고, 특히나 저렇게 용감한 작전을 수행하는 등 (적, 아군을 떠나) 군인으로 존경받을 만한 전공이나 무공, 용기를 보여준다면 포로가 되어도 극진하게 대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단적인 예로 라쎄이니에서 독일 6기갑사단의 진격을 이틀동안 저지시켰던 KV-2가 끝내 격파당하자, 독일군은 조국을 위해 최후까지 저항한 그들을 최대한 정중히 매장하였다고 하며, 위에서 진주만 공습 당시 피격당한 기체로 끝까지 저항하다 자폭하려다 실패한 일본군 파일럿도 미군이 예를 다해 매장하였으며, 그 옛날 임진왜란 당시에도 최후 항전한 부산 군민들을 한 곳에 바르게 매장하고 (나무긴 하지만) 비문까지 새겨준 왜군 등등 수없이 많다. 이탈리아군 승무원들이 (심문은 받았지만) 좋은 대접을 받은 것도 그래서다. 이후 영국 해군도 이탈리아군 어뢰정과 비슷한 물건을 만들어 채리옷이라고 명명했고 [[비스마르크급 전함]] 2번함 티르피츠를 앉은뱅이 오리 꼴로 만드는 데도 나름대로 공을 세웠다. 그리고 이때 활약은 수중폭파 전술이라는 특수전 전술의 한 획을 그어 70년이 지난 지금도 대부분의 특수부대들이 활용하는 대표적인 전술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